"나는 이것저것 말로만 지시하는 아트 디렉터가 아니다.
옷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 관여하고 수행하는 패션 디자이너다"
작년에 봤던 마르지엘라의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나온 마틴 마르지엘라의 대사.
(사실 영화를 본 기간이 꽤 지나서 정확한 대사는
기억이 안나 비슷한 워딩으로 대체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정확한 대사를 아시는 분들은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르지엘라의 위의 말을 듣는 순간 정말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트 디렉터란 단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마르지엘라는 저 문장으로 자신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정말 패션 디자이너라는 단어에 걸맞은 사람.
패션을 전공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뒤부터는 항상 마르지엘라의 빅팬이었다.
장 폴 고티에와 마르지엘라는 지금까지도 나의 영웅들이다.
마르지엘라가 앤트워프 석사과정 후 장 폴 고티에에서 인턴생활을 했다는 것조차도
패션 입문자였던 나에게는 굉장히 흥미로웠던 점이었다.
워낙 잘 알려진 디자이너라 정확한 정보전달보다는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기억을 끄집어 멋대로 글을 써보려 한다.
마틴 마르지엘라는 벨기에 출신의 디자이너다.
그의 할머니께서는 봉제사였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 때문에 어렸을 적부터 패션에 노출되있는 상황에서 자라왔으며,
태생적으로 조용하고,소심한 성격으로 밖에서 나가 놀기 보다는 항상 패션을 소재로 집안에서 놀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천재들은 엄청난 재능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자기 분야의 환경에 노출되어있었던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자연스레 그의 꿈은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으며, 하이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기에 그는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에서 패션디자인을 공부하며, 석사과정까지 마무리하게 된다.
그 후 평소에 본인이 존경하던 장 폴 고티에의 회사에서 3년간의 수습디자이너 생활을 시작하였다.
마르지엘라 영화에서 장폴고티에의 말을 인용하자면
그는 자신의 회사에서 일했을 때도 굉장히 차분하고, 내성적이었고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재능 있었으며
그가 수습 디자이너로 자신의 회사에 왔을 때 이미 완성된 디자이너였다고 하였다.
이후 마틴 마르지엘라는 자신의 이름을 딴 디자이너 브랜드
MASION MARTIN MARGIELA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를 설립하게 된다.
물론 처음 시작할 때는 동업자가 있었지만 디자인은 마르지엘라의 영역이었다.
1988년에 설립한 메종 마르지엘라는 90년대에 이미 살아있는 전설이 된다.
사실 유서 있는 아카이브의 하우스가 아닌 개인 디자이너 브랜드가 단기간에
이 정도로 독자적 위치에서 도달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는 이미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가 돼버렸고,
당시의 힙스터들에게 가장 선호받는 브랜드가 되어버렸다.
마르지엘라가 이토록 열망받는 브랜드가 된 몇 가지 큰 요인을 꼽아보자면
일단 첫 번째로 혁신적인 디자인일 것이다.
해체주의라는 개념을 거의 최초로, 가장 멋있게 패션에 대입시켰다.
해체주의의 개념은 지금까지도 모든 하이패션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으며
그 대부분이 마르지엘라의 아들이고, 심지어 대부분은 마르지엘라의 품에서 전혀 발전하지 않고
심지어 퇴보하고 있다고 까지 생각한다.
유명한 베트멍 뎀나 바질리아 역시 마르지엘라에서 수습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절대 베트멍이 마르지엘라의 해체주의에서 퇴보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 절대 아니다.)
두 번째로 그는 극도의 익명성을 추구한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마르지엘라의 얼굴 사진이 5장도 채 없을 것이다.
(내 기억상으로 나는 2~3장 정도의 안 좋은 화질의 사진밖에 본 기억이 없다.)
그는 유명해지는 것을 극도로 꺼렸고, 이것은 그의 개인 성향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1선에서 스타가 되기보다는 오로지 패션으로만 자신을 판단해주기를 원했었다.
항상 쇼의 마지막에 인사를 하러 나가지도 않았으며, 인터뷰에도 절대 참석하지 않았다.
마르지엘라 팀의 단체사진을 찍는데 정작 창립자이자 디자이너인 마틴 마르지엘라만
참석하지 않은 것은 아주 유명한 일화 중 하나이다.
그의 익명성은 자신의 모습을 숨기는 것뿐만 아니라
런웨이에서도 모델들에게 가면이나 복면 같은 것들을 씌워서
사람들이 모델이 누구인지, 그녀의 얼굴이 어떤지에 대한 평가를 보류하고
오직 옷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일부에서는 마르지엘라가 신비주의 이미지를 만들어서
자신의 상업성을 높이는 것 아니냐 하는 비판들도 있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마르지엘라의 극도의 익명성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상품이 아니라고는 생각한다.
허나 만약 그렇다고 하거나,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의 천재성은 어떤 성향으로도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8년 은퇴 이후도 여전히 그는 대중들에게 이미지 노출을 하지 않고 있다.
마르지엘라 다큐멘터리에서도 그는 겨우 손과 목소리만 출연했지만, 그의 팬들에겐 이 정도 퍼포먼스로 충분히 만족했을 것이다.)
세 번째로 모든 것을 앞서가는 디자인이었다.
최근에 와서야 화두 되는 리사이클링 패션, 지속 가능한 패션은
아주 오래전부터 마르지엘라가 추구하던 패션과 궤를 같이 하는 부분이 있다.
그는 이미 한번 의복으로 사용된 원단들이나 아이템들을 해체하여서 새로운 옷으로 재창조했다.
어떻게 보면 그의 해체주의 철학과도 공통분모가 있는 셈이다.
다른 브랜드들이 거대한 런웨이장을 이용하는 반면에
그는 정말로 아무데서나 했다.
(정말 생각 없이 런웨이 장소를 아닌 제삼자가 봤을 때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강한 뉘앙스로 말한 것임 참작해주세요)
주차장, 다리 및, 골목 등등 지금 시대에서는 정말 힙하고 흔한 런웨이 장소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혁신적인 일들이었다.
모델 캐스팅 또한 전문 모델이 아닌 일반인 모델들을 캐스팅하였으며,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캐스팅을 하기도 하였다.
1997년에는 에르메스의 디자이너가 되기도 하였는데
초반에는 에르메스의 색이 많이 빠져 에르메스의 팬들과 패션 관계자들에게 질타를 받기도 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디자인을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내 기억상으론 채 3년을 못 채우고 에르메스 디자이너를 관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알려진바론 마르지엘라와 에르메스의 경영진 모두 좋은 관계였으며 서로에게 만족했다고 하는데 그 후의 정보가 생각나지 않네요... 죄송합니다.)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펼친 마르지엘라였지만, 이런 훌륭한 디자이너에게도
브랜드를 운영하는 경제적인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것 같다.
마르지엘라는 강한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아주 돈이 되는 상업적인 브랜드가 아니었다.
마틴 마르지엘라는 결국 LVMH에게 인수되었으며
그 후로 마르지엘라는 결국 상업적인 브랜드 운영에 회의감을 갖았으며
결국 2008년에 자신의 브랜드마저 손을 떼며 패션계에서 은퇴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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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제 개인적인 지식으로 쓴 글이어서 내용 중엔 오류가 많을 수 있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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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르지엘라의 관해서는 더 자세히 쓰려면 쓸 요소들이 너무 많습니다.
마르지엘라의 해체주의
그에게 영향받은 디자이너
마르지엘라 고유 넘버링
등등
하지만 윗글도 너무 텍스트량이 많아지게 돼서 여기까지만 글을 작성하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더 많은 정보를 원하신다면 2편, 3 편으로 확장시켜
더 구체적인 정보도 소개해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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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마르지엘라 레플리카 향수에 관해 쓴 글이 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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